언어의 온도 51p
“한기주 씨!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세요. 자존심 세우면서 사과하는 방법은 없어요.”
- 드라마 파리의 연인 中
언젠가 이 대사를 듣고 속이 뜨끔했다. 화해의 손을 제때 내밀지 않고 자존심만 세우다 관계에 앙금을 남긴 적이 떠올랐다.
기자 시절, 사소한 다툼으로 불편해진 선배가 있었다. 토라지기 전까지 꽤 친했지만, 서로 먼저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는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 말없이 빨간 사과 한 알을 건넸다.
선배의 얼굴과 닮은 사과를 보며 한참을 망설이다 한입 베어 물었다. 상큼한 향이 입안을 채우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선배는 apology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apple (사과)로 대신했던 것이다.
미안함이 사라진 사회
며칠 전, 카페에서 한 아이가 뛰어다니다 남성 고객의 커피를 쏟게 했다. 다행히 화상은 없었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아이의 어머니는 “안 다쳤네?”라는 눈빛으로 남성을 힐끗 보더니 사과 없이 자리를 뜨려 했다.
남성이 항의하자 그녀는 되레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원래 착한 아이라 말이야. 당신도 아이 낳아봐!”
그 장면을 보며 한때 국민 예능이었던 가족오락관 의 ‘고요 속의 외침’ 코너가 떠올랐다. 목소리를 높이면 이긴다고 믿는 사람들 속에서, 사과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사과는 승자의 언어다
지하철에서 어깨를 부딪치고도 사라지는 사람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들. 우리는 언제부터 염치(廉恥)를 잃어버린 걸까?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염치없는 사람을 우리는 ‘얌체’라고 부른다.
사과는 어렵다. 엘튼 존도 노래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인 것 같아.”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하지만 사과는 패배가 아니다. Apology 는 그리스어 apologia 에서 유래한 단어로, ‘그릇됨에서 벗어나는 말’이라는 뜻이 있다. 얽힌 일을 풀려는 의지와 용기를 지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사과다.
사과의 질을 결정하는 것
사과의 한자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사과(謝過)에는 ‘면하다’ 혹은 ‘끝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잘못을 지나간 일로 만들고 사태를 전환하는 행위, 그것이 사과다.
하지만 사과의 질을 떨어뜨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하지만’이다. “미안해, 하지만...”이라는 순간, 사과의 진정성은 증발한다. ‘내 책임만 있는 게 아니라 네 책임도 있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과는 힘겹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술이 떨리는 것은, 사과의 영어 단어 ‘sorry’가 ‘아픈’이라는 뜻의 ‘sore’에서 유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